“대한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하였다”, 尹 파면

2025년 4월 4일, 헌법재판소가 8대0 전원일치로 대통령 윤석열 탄핵심판 사건(2024헌나8)에 대하여 파면을 결정했다.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사태가 발생한 지 123일, 12월 14일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 111일 만이었다.

8인의 헌법재판관은 선고 전 재판관 개인 성향을 기반으로 한 여러 가지 추측을 비웃기라도 하듯 6개의 쟁점에서 단 하나의 소수의견도 내지 않고 전원일치로 파면이 정당하다고 판단하였다. 비상계엄 선포 자체, 군경을 동원한 국회 봉쇄 시도, 포고령 1호의 내용, 군을 동원한 선거관리위원회 점거 및 압수수색, 정치인과 법조인 등에 대한 체포 지시가 모두 위헌 위법한 행위라고 판단하였으며, 재판 절차에서의 흠결도 존재하지 않다고 밝혔다. 대통령을 파면할 만큼 그 위헌 및 위법행위가 중대하다고도 명시하고 있다.

문형배 헌법재판관이 직접 낭독한 선고요지는 쉽고 명확하게 결정문의 내용을 국민에게 전달하고 있다. 선고요지의 경우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특히 법 위반 행위가 파면을 정당화할 만큼 중대한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담긴 후반부가 주는 울림이 사뭇 크게 다가왔다. 그중에서도 네 가지 문장에 주목해봤다.

1. 한편 국회가 신속하게 비상계엄해제요구 결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이었으므로, 이는 피청구인의 법 위반에 대한 중대성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이 문장은 시민들의 저항의 역할을 인정했다는 것에서 그 의미를 높게 살 수 있다. 시민들의 저항이 있지 않았다면 사태가 더욱 심각해졌을 수도 있다는 함의를 지님과 동시에, 시민들의 힘이 그만큼 강력하다는 것을 뜻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과 관련하여서는 그들이 군인과 경찰이기 이전에 국민이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국민을 위하여 사용되어야 하는 공권력이 국민에 대하여 사용되어서는 안 되며, 그에 대한 군경 내부에서의 자정작용이 있었다는 점에서 대한민국 사회의 민주적 발전 정도가 그만큼 우수함을 느낄 수 있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청구인은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여 이 사건 계엄을 선포함으로써 국가긴급권 남용의 역사를 재현하여 국민을 충격에 빠트리고, 사회․경제․정치․외교 전 분야에 혼란을 야기하였습니다.

이 문장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비상계엄이 지니는 의미를 헌법재판소가 고려했음을 보여준다. 단순히 이번 사건에서 행해진 일만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대한민국의 국민이 비상계엄과 독재하에서 탄압받아왔고, 이를 극복해왔던 일들을 함축하여 이 사건 판단에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대한민국 국민이 피로써 쟁취해낸 민주주의를 다시 같은 방식으로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국민적 정서에 대한 대변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강 작가의 ‘죽은 자가 산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과거의 대한국민이 현재의 대한국민을 뭉치게 하고, 강한 힘으로 작용하여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켰음을 느낄 수 있다. 

 3.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서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을 초월하여 사회공동체를 통합시켜야 할 책무를 위반하였습니다.

이 문장에서는 대통령의 책무로 사회공동체의 통합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대통령의 사전적 정의가 ‘국민을 크게 통합하는 우두머리’라는 뜻임을 알린 바 있다. 대통령이라는 단어 그 자체가 통합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자신의 권력을 바탕으로 원하는 바를 실현하기만 하는 자리가 아닌, 국민 전체를 바라봐야 하는 자리임을, 너무나 당연하면서도 오랜 기간 잊어왔던 그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게 한 문장이다.

4. 군경을 동원하여 국회 등 헌법기관의 권한을 훼손하고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함으로써 헌법수호의 책무를 저버리고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대한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하였습니다.

이 문장에서 주목한 부분은 대한국민이라는 표현이다. 대한국민이라는 단어는 대한민국헌법 전문에 등장한다. 대한민국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으로 시작하여 ‘~헌법을 (중략) 개정한다.’로 끝난다. 우리 헌법 전문은 한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헌법을 제정한다는 문장의 주어가 바로 대한국민임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바라봤을 때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대한국민’이라는 문장의 표현이 더욱 와닿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대한민국의 주인은 대한국민이고, 대한국민이 만든 헌법 체계 안에서 모든 국가권력이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의 주인이자 헌법 제정권자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하였다는 것은 일종의 반역이라고 볼 수 있다. 과거 왕이 곧 국가이던 시대에 왕에 대한 반기를 드는 것이 반역이었다면, 국민이 곧 국가인 대한민국에서는 국민에 대한 중대한 배반이 바로 반역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 제기하던 ‘대통령이 무슨 쿠데타’와 같은 주장에 대하여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이다’라고 명시했다는 점에서도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은 조그마한 논란도 남기지 않겠다는 의지로 아주 꼼꼼하게 쓰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속에서도 몇몇 문장에 담긴 함의에 대해 살펴보았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국가와 국민에 있어 중요한 시사점을 남겼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이와 같은 일이 다시 반복되지는 않았으면 한다. 모든 국민이 헌법재판소의 선고를 집중하여 기다리고, 여기에 온 국력을 쏟고, 그 판단에 따라 향후 정국이 결정된다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이번 탄핵심판에 대한 결정문은 국민주권과 국가통합의 관점에서 분명한 의미가 있으면서도, 그 문장의 구성이 쉽고 명료하기 때문에 되도록 많은 국민이 읽어봤으면 한다. 나라의 주인임을 스스로 인식하고, 국가의 회복력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도 될 것이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대한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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